에너지젤은 생각보다 걸쭉하고 맛이 없다.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다면 대회 전에 꼭 한 번 시험 삼아 먹어볼 것을 추천한다.
첫 참가 때는 13km 즈음에 “난 이걸 왜 뛰고 있는가”라는 물음과 함께 “하프도 이런데 풀코스는 어떻게 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두 번째 참가 때는 동일한 자조 섞인 물음이 18km 즈음에 찾아왔다
분명 나는 달리기를 했는데 뛰고 난 뒤에 왜 다리 대신 어깨가 뻐근한 것인가
막판에 발목을 잡는 것은 심폐지구력이 아니라 무거워진 다리였다. 숨이 차지는 않는데 다리가 무거워져 페이스를 올릴 수가 없었다.
중반 이후 나와 비슷한 페이스의 러너를 만나는 것은 귀인을 만나는 것과 같다. 지쳐서 페이스가 떨어질 때쯤 비슷한 페이스의 러너를 만나면 잠시 그의 (혹은 그녀의) 등만 바라보며 잠시 무지성으로 뛸 수 있다.
반환점을 돌아 같은 코스를 되돌아 가는 것은 항상 매너리즘과의 싸움이다. 마음의 소리는 쉴 새 없이 어차피 돌아갈 거 뭐 하러 뛰냐라는 푸념이 늘 가득해진다.
러닝 중 만나게 되는 귀인 페이스메이커만큼이나 귓가에 흐르는 랜덤한 플레이 리스트는 몸과 마음을 위로하며 없던 힘을 북돋아 준다. 이번의 경우에는 5km 남짓 남은 시점 Roy Hargrove의 Mr. Clean 이 그러했다.
초반 정체구간에서 앞서 나가지 못하는 것에 조바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중반 이후 내 페이스로 달리다 보면 하나 둘 앞지르다가 어느 순간 비슷한 수준의 러너와 일정한 한격을 유지하게 된다.
체중 감량과 마라톤 기록 향상의 상관관계는 경험상 어느정도 사실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히 움직이는 몸이 가벼워진 것이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의심스럽다. 오히려 감량된 체중을 만들고 유지하기 위해 늘어난 운동량 때문이 아닐까.
체중 1kg당 풀 마라톤의 기록 간 계산으로 풀 마라톤 시 1kg당 약 3분 정도의 기록이 향상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물론 이것은 평균적인 수치이며 개인차가 있습니다. 현재의 체형이 비만형이라면 약 2~3분, 약간 마른 스타일인 사람은 3~4분의 기록이 단축되었습니다.
완주를 전후로 “앞으로 내인생에 마라톤은 없다”라고 섣불리 단정 짓는 나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쉽게 그 고생을 일찍 잊어버리는지라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다음 마라톤 접수 일정을 검색하고 있다.
환갑을 훨씬 넘기고도 내 앞을 거침없이 달리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존경심 넘어는 마음의 울림이 있다.(그분들의 나이는 ㅇㅇ띠 러닝 동호회라는 등에 적힌 문구로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하루키 옹도 아직 뛰는데 나도 앞으로 오래오래 뛰어야지.
주요 지점마다 동호회 및 지인들이 보내는 응원과 환호는 설령 나와 전혀 관계 없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해도 다소 떨어진 페이스를 올려주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날 응원하는 사람들이 아닌 그 인파를 빨리 벗어나고자 하는 어떤 민망함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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